2002년 6월.

그해 여름은 참으로 뜨거웠습니다.

월드컵 4강이 기적과 같았듯이

펜타브리드도 1년을 기적처럼 살아냈습니다.

 

 

 

 

 

 

 

이제, 세상이 조금씩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습니다.

 

펜타브리드라고 있다고.

펜타브리드라고 제법이더라고.

펜타브리드라고 열심이더라고.

펜타브리드라고 잘 하더라고.

 

 

 

 

 

 

그 감사한 소리들이

펜타브리드를 남산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둥지는

대한민국 최초의 방송국 KBS가 시작된 곳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한국영화의 메카인 영화진흥공사가 쓰던 곳이었습니다.

새로운 디지털 패러다임을 꿈꾸는 청춘들에게는

너무나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바야흐로 남산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방배동보다 두배나 커진 사무실에서,

1년전보다 두배나 커진 일과 꿈을 

창업때보다 두배나 많아진 펜타브리더들은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되돌아보기>

 

 

 


2002 펜타브리드 첫돌 기념카드 제작기

 
펜타브리드는 지난 2002년 6월1일 첫돌을 맞이해 대외적으로 펜타브리드의 첫돌을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는 있도록 1주년 기념카드를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무사히 1년을 지낸 돌박이 아기처럼 기특하고 앞으로를 위한 기대 가득한 심정으로 `첫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 그럼 뒤늦게나마 전쟁과도 같았던 첫돌카드의 제작 비화(?)를 밝혀본다. 5월17일 카드제작을 위한 첫번째 회의에서 아이디어는 만발했고 카드 제작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다양한 카드소재와 패킹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시장조사가 선행되었고 카드안에 들어갈 인사글은 물론 직원 개개인의 자필사인과 간단한 축하 메세지를 담기로 했다. 펜타브리드가 첫돌을 무사히 맞이할수 있었던 건 힘들 때도 기쁠 때도 항상 함께 했던 직원들의 힘이었으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펜타브리드의 자부심이라고 강조하려 했기 때문이다.5월 23일부터는 본격적인 시안제작에 들어갔다. 펜타브리드만의 색깔이 보여지면서도 기존의 일반 카드들의 형식과는 다른 신선함이 느껴져야 했다. 며칠동안 계속된 시안작업 끝에 세가지로 압축되고 이들 중 전 사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형광 분홍과 파랑, 은색의 타이포그래피가 세련된 첫돌카드로 최종안이 결정되었다. 결정된 시안이 인쇄에 들어간 사이 크리에이티브 연필판과 구성물 패킹을 위한 후가공작업에 돌입했다. 회사전체가 펜타브리드의 상징인 5개 구멍을 뚫기 위해 쿵쿵거리는 소리,연필 하나 하나 묶는 작업을 하면서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 종이를 자르고 붙이는 모습은 가히 가내 수공업 공장을 방불케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작업들이 차츰 윤곽이 보이고 드디어 6월1일 첫돌 기념카드의 우편발송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직원 한명 한명의 자필사인과 메세지를 담은 포스터형 첫돌 카드와 잔치상에서 크리에이티브한 연필을 잡은 펜타브리드의 크리에이티브 돌잡이 연필, 그 연필을 받쳐주는 연필 그래픽판, 그리고 포장을 위한 정전기방지봉투로 구성된 기념카드는 첫돌 기념카드로의 의미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미디어 통합 마케팅"에 최고가 되고자하는 펜타브리드의 의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결과물이었다.
 
 조혜원| Designer, Creative Team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