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을 나는 한동안 읽지 못할 것이다

이런!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인 『여자 없는 남자들』을 사려고 서점에 갔다가 안자이 미즈마루가 올봄에 세상을 떠난 것을 알았다. 『꼬마 니꼴라』를 생각하면, 글을 쓴 르네 고시니 보다는 장 자크 상페의 일러스트가 눈앞에 먼저 펼쳐지듯이, 미즈마루의 삽화가 없는 하루키의 소설 또한 어쩐지 완전하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손에 집었던 책을 서가에 다시 올려놓았다. 하루키의 신작을 아마 한동안 읽지 못할 것을 예감했다. 미즈마루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를 시작으로 『밤의 거미원숭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같은 작업을 통해 -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듯한 일러스트로 - 하루키의 문장을 이미지로 풀어낸 인물이다. 하루키의 텍스트를 시각화해낸 그의 독특한 작업 덕분에 우리는 어쩌면 ‘하루키만의 특별한 뉘앙스’를 알고 사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이 있다.

"제가 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이란 건 '그림'이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은 좋아했지만, 그것은 제 마음이나 감정, 생각한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세상에 아주 넘쳐납니다. 루브르 미술관에서 30분만 있어 보면, 미켈란젤로도 있고, 라파엘로도 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이 승부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그림 같은 건 그릴 수 없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력적인 그림이란 것은 잘 그린 그림만이 아니라 역시 그 사람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런 걸 그려나가고 싶습니다."

미즈마루는 사실 덴츠를 비롯한 여러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며 일본 내 광고상을 휩쓸었던 유명한 아트디렉터 출신이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나에게 미즈마루의 그림은 매우 계산적으로 읽힌다. 그의 그림은 하루키의 문장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으며, 독자의 시선을 문장 밖으로 분산시키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장만으로는 줄 수 없는 '좋은 기분'을 독자에게 덤으로 만들어준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미즈마루의 그림이 없는 하루키의 문장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많이 허전하고 아쉽다.

차가워진 밤공기가 느껴져 창문을 닫는다. 그러다가 미즈마루의 그림을 보기 좋은 계절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방과 내 심장이 조금 따듯해질 것이다. 하루키가 쓰고 미즈마루가 그린 『커티샥』을 얼음 잔에 채워 한잔 마시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 어쩌면 나는 하루키의 문장보다 미즈마루의 그림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하루키처럼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도시 어딘가에 있겠지만, 미즈마루처럼 그릴 수 있는 건 확실히 미즈마루밖에는 없다.

*이미지 출처: 리쿠나비,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