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Show다. 다 거짓말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프라가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는 스타크래프트와 한게임 고스톱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60~70년대 텔레비전이 각 가정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아마도 그건 ‘프로레슬링’ 덕분이었을 것이다. 역도산과 박치기왕 김일이 자기보다 두 배는 더 큰 외국의 레슬러들을 쓰러뜨리는 장면은 강대국에 주눅이 들어있던 국민 모두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소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골목에서 김일의 박치기와 안토니오 이노끼의 코브라 트위스트를 연마하곤 했다. 프로레슬링은 명실공히 국민 스포츠였다. 장영철이 “프로레슬링은 Show다.” 라고 소리치며 우리를 멘붕에 빠지게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미국에서 프로레슬링은 1900년대 초반부터 마피아와 도박사들에 의해 지하에서 활성화되었다. 그래서 프로레슬링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스포츠였다. 링에 오른 선수들은 패배할 경우, 링 위에서 죽거나 자신에게 돈을 걸었다가 잃은 링 밖 마피아들에게 생명을 위협받곤 했다. 1960년으로 접어들면서 마피아들의 시대는 끝났지만 이미 ‘죽기 아니면 살기’에 길들어 있던, 그리고 무식하게 덩치만 큰 거인들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이 단순한 스포츠는 그 잔혹성에 대해 종교계와 여성단체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게 된다. 프로레슬링은 이내 B급 산업으로 전락하고 유랑극단처럼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빈스 맥마흔 시니어’는 이 산업에서 떠돌이 흥행사로 평생을 보냈다. 그러다가 1982년, 36살의 빈스 맥마흔이 아버지로부터 몰락한 가업(?)을 이어받는다.
이것은 Show다. 하지만 위험은 진짜다.
빈스 맥마흔은 ‘죽기 아니면 살기’ 방식으로는 더 이상 프로레슬링의 미래가 없음을 간파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가 발견한 돌파구는 “이것은 Show다.” 라고 대놓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는 Show를 만들기 위해 우선 자신이 보유한 레슬러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인디언, 경찰관, 엘비스 프레슬리, 백만장자, 폭주족, 부도교도, 장의사, 래퍼 등 시대를 투영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레슬러들에게 만들어주고 선과 악의 캐릭터를 부여하며 스토리를 개발한다. 더불어 유명인사와 연예인을 등장시키며 <레슬메니아>로 대표되는 초대형 이벤트를 연이어 개최한다. 그러자 라스베이거스와 공중파 방송이 그의 전략에 놀아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Show다. 하지만 위험은 진짜다.” 라는 빈스의 전략은 주효한다. 워리어가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주고, 헐크 호건이 노란 티셔츠를 찢는 순간 미국의 어린이들은 물론 전 세계 소년들이 프로레슬링으로 다시 빠져든다. 더 록, 스톤콜드, 존 시나같은 슈퍼스타들이 계속 등장하고, 심지어 이들을 영화에도 출연시켜 할리우드 지분까지 차지하면서 프로레슬링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을 구축한다. 빈스 맥마흔은 억만장자가 된다.
나만의 쇼쇼쇼!
하지만 이뿐이라면 빈스 맥마흔은 그저 유능한 사업가일 뿐이다. 빈스 맥마흔이 놀라운 Creator인 이유는 지금부터다. 그는 이 모든 Show를 책상에 앉아서 지휘한 사람이 아니다. 소비자가 열광하는 지점은 바로 ‘악당이 쓰러질 때’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약자에게 악당은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빈스는 기꺼이 ‘WWE의 악덕 회장’이라는 캐릭터로 링 위에 올라간다. 야비한 반칙을 많이 쓰지만, 직접 레슬링을 하며 착한 슈퍼스타들을 괴롭히다가 결국 링 위에서 처절하게 응징당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시청자들의 카타르시스는 극에 달한다.
이게 쉬운 일일까? 그렇지 않다. 화려한 회장실에서 폼 잡고 앉아서 레슬러들이 벌어주는 돈만으로도 이미 억만장자가 된 그가 링에 오르기 위해 몸을 만들고, 기술을 연습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게다가 경기장에서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조롱뿐인데 말이다.
이제 빈스 맥마흔은 65세지만 오늘도 그의 Show는 계속되고 있다. 그를 보며 ‘리더의 조건’을 생각한다. 흔히들 지장, 덕장, 용장이라는 표현으로 리더십을 구분하기 일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야말로 리더가 가져야 하는 기본기라고 나는 믿는다. 빈스 맥마흔이 기꺼이 망가질 수 있는 이유를 나는 여기에서 찾는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와 집중이다. 그것이 ‘자기 애(愛)’를 뛰어넘었을 때만 빈스 맥마흔 같은 행동이 시작된다. 당신은 어떤가?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 조직의 목표를 위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파괴하면서 망가지고 있는가? 아직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다거나,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 아마 당신은 계속 ‘다른 사람의 Show’ 속에서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만의 Show. 찾기를, 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