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히로시마. ‘이세이 미야케 제국’의 시작
원자폭탄이 터졌다. 일왕은 항복했고, 패전국이 되어버린 일본은 미국의 점령지가 되었다. 미쯔비시와 소니 같은
순응자들은 미국의 은총 아래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커 나갈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고, 반면에 다자이 오사무나 미시마 유키오 같은 반항의 아이콘들은
패전국의 일원으로 살지는 않겠다며 레지스탕스처럼 회복의 문학을 적어나갔다. 그런 혼란스럽던 일본에 이세이 미야케(1938~)라는 소년도 있었다.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일본 역사를 단편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듯,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을 정의한다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는 한 장의 정사각형 천에 소매를 붙여버린 통나무 같은 옷을 유행시킨 적이 있었고, 보통 사람들이 ‘주름치마’ 라고 말하는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를 통해 옷을 비틀고, 없는 주름을 만들고, 수축시키거나 팽창시키는 작업도 했다. 유리 섬유를 소재로 사용한 Bodyworks 같은 프로젝트는 옷이 피부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대중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철학자들까지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죽을 때까지 고집하던 검은 옷도 이세이 미야케의 작품이었다. 그가 제안하는 거의 모든 것은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고 "이세이 미야케"라는 이름의 향수도, 시계도, 마시는 물도 함께 팔리기 시작했다. 1999년에 그는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여전히 이세이 미야케라는 브랜드는 점점 힘이 세지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 허물어뜨리고 다시 그리기
물론
세계적으로는 이브 생 로랑부터 마크 제이콥스까지, 일본으로 국한시키면 다카다 겐조나 요지 야마모토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이세이 미야케를 그 정도 반열에 함께 올리는 것은 매우 큰 결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세이 미야케는 무언가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트린’ 사람으로 나에게는 읽힌다. 그가 허물어트린 잔재들 사이에서 발견된 ‘한 장의 천 쪼가리’가 새로운
근본의 형(形)으로서 시대의 이정표가 된 것이다. 전통의 기모노와 미래의 테크롤러지가 함께 묻어있는 그런 새로운 천 쪼가리 위에서 크리에이티브를
펼쳐나갔다. 이세이 미야케는 한 사람으로서의 스타일이나 철학을 뛰어넘어 동양과 서양, 몸과 옷, 전통과 현재를 끝없이 파괴하면서 결국 다른
세상을 발견해냈고, 그것을 "미야케 월드"로 새로 정의한 창조자다.
"소재가 될 수 있는 것, 옷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의 경계는
없다. 어떤 것도 옷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세이 미야케의 작업에는 어떠한 제약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이세이 미야케의 해체와 발견이 그를 단순한 패션 디자이너에서 ‘크리에이티브 구루’의 자리로 옮겨준
것이다.
Hey! What are you, doing?
모든 것은 그의 유년 위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시작되었다. 폭탄이 터지면서 전통도, 전쟁도, 자연도, 문화도, 일본군도 미군도 - 폐허가 되며 뒤죽박죽 뒤섞였다. 그리고 이세이
미야케는 그 혼란 속에서 ‘이전과 다른 것’을 발견했고, 그 발견으로 지금도 먹고살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답은 간단하다. 지금
당장 당신의 오늘에 핵폭탄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써온 기획서, 지금까지 그려온 스타일의 디자인 시안을 우선 뒤죽박죽 해체해야
한다. 그래야만 당신을 감싸고 있던 무수한 제약과 관념이 사라지고 비로소 어제와는 다른 새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게 크리에이티브라는
거다. 크.리.에.이.티.브!